본문 바로가기
여행

수원화성 아이와 함께 장안문 코스 답사, 버스타고 수원화성 가는법

by 커피는바닐라라떼 2024. 10. 17.
728x90
반응형

초등학생과 중학생 아이들와 함께 지하철과 버스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답사를 갔다온 수원 여행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 인 수원화성입니다. 수원화성은 간단히 한바퀴 돌아보면 좋은 데이트 코스나와 운동, 가족 나들이로도 아주 제격입니다.
소소한 역사 내용과 더 소소한 유머를 조금 담았으니 수원화성에 대한 답사 레포트나 숙제가 꼭 아니더라도 몇개만 잘 알아 두셨다가 잘 써먹으면 뭔가 종 있어 보일수가 있습니다.

저희들은 아이들이 지하철과 버스를 타는 걸 좋아하여 차는 집에 두고 오로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수원화성을 가는 법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는 나중에 다시 언급드리겠지만 장안문(북문)에서 내려 시계방향으로 돌아 팔달문(남문)코스 나들이로 결정했습니다.


지하철 수원역 7번 출구로 나와 다시 버스를 타기로 했습니다. 수원화성은 지하철로만 갈수가 없기 때문에 7번 출구로 나와 한 50m 정도 걸어 대따시 큰 정거장이 나오는데 그 버스정류장에서 7-1A버스가 장안공원 쪽으로 가는 버스입니다.

수원역에서 몇 정거장만 가면 되는데 저희는 그 중에서 장안공원에서 내렸습니다. 장안공원에서 내리면 이제 본격적인 화성나들이가 시작이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장안문에 가면 이렇게 작은 미니어처로 만든 장안문도 있습니다. 정조가 수원화성을 만들면서 수 많은 공을 들였는데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장안문은 중국의 장안처럼 마찬가지로 화성이 번성하기를 원하여 그 때문에 지어진 이름입니다.
  그리고 수원화성은 본따서 만든 입체 지도가 있습니다. 그림 기준 아랫쪽이 바로 장안문입니다. 저희가 장안문에서 시계방향으로 팔달문 가는 코스로 잡은것은 상대적으로 이쪽이 성곽의 높낮이가 낮아 아이와 가볍게 산책겸 나들이 하기 좋아 그랬습니다.
오른쪽 코스 서장대쪽으로 가게되면 아래 딱 보시는 바 처럼 약간 등산코스로 느껴질수 있을 만큼 고생할수 있습니다. 그래도 지난번 한바퀴를 모두 돌았을때 아이들도 크게 어렵진 않았습니다.

장안공원에서 조금 걸어가면 바로 장안문이 나오는데 제가 알기로 장안문이 숭례문 보다 더 큰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만큼 조선을 건국 및 창업할때 만큼 정조대왕의 관심과 생각을 느껴볼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의 경우 조선중기깨 벽돌을 만드는 기술이 없어 성이나 성곽등을 만들때 전부 돌로 지었습니다. 원래 성은 다 돌로 짓는거 아닌가? 벽돌로 만들면 충격에 더 잘 깨지는것 아닌가 하실수가 있습니다.

먼저 큰 돌을 깎아 만들면 저 크고 무거운 돌을 자르고 다시 나르는 일도 문제입니다. 물론 정약용이 거중기를 이용하여 완공시기를 엄청나게 당기긴 했지만 그래도 돌을 운반도 어렵고 무엇보다 아래처럼 보시는 것처럼 돌을 다시 크기에 맞게 하나 하나 맞추면서 쌓는데 이게 또 텍트리스가 잘 안되면 다시 가공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이유는 정조대왕의 시기엔 전쟁이 총이 아니라 화포 전쟁입니다. 참고로 수원화성의 경우 1794년도에 건립이 되고 정조는 1800년에 임종하였습니다.
외우는 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성군이 죽었으니까 에이 십ㅍ 이건 굉장히 위험할수 있는 단어이니까 알아서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임금님한테 성을 늦게 만든다고 쿠사리(?) 94리 먹을수가 있으니 빨리 짓자고 해서 1794년 이렇게 외우시면 좀 도움이 됩니다.
다시 왜 벽돌로 짓지 벽돌이 훨씬 더 약한거 아닌가 할수가 있습니다. 물론 구워서 만든 벽돌의 경우 돌보다는 약할수가 있지만 먼저 벽돌은 중요한 것시 사이즈가 규격화 될수가 있기 때문에 일단 한번 만들면 사이즈 문제 없이 바로 쉽게 만들수 있습니다. 그건 레고 블럭으로 아무거나 쉽게 만들수 있는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잠시 말씀드린대로 조선 후기는 화포를 이용하여 전쟁하는 시기라서 화포로 돌성을 공격하면 성곽이 쉽게  파괴되는데 벽돌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포탄이 푹 들어가서 파괴되지 않고 성의 내구성에도 문제가 없습니다. 물론 이것은 상대적인 표현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론적으로는 본격적으로 건축술에 있어 벽돌을 이용하여 만들었던 것이 바로 수원화성입니다.
그리고 수원화성 성곽길을 쭉 걷다보면 이렇게 네모난 구멍이 나온것이 있는데 왜 둘째가 두개는 방향이 앞으로 나와 있고 다른 하나는 아랫방향으로 되어 있냐고 질문 하였는데 그건 전방의 적과 그리고 성 아래에서 올라오는 적을 동시세 공격하기 위해서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걸어가면 왠지 어린이 홍삼을 먹여야 할것 같은 홍이포입니다. 그런데 이거 색이 검은색인데 왜 홍이포라고 하는거야 할수가 있는데 홍이포는 중국 명나라 시절에 네덜란드인(빨간 머리라서 홍모이에서 따왔습니다)이 사용하던 대포라고 하여 홍이포라고 불렸습니다.  이 홍이포 하나로만 해도 글을 쓴다면 포스팅 3개가 나오는데 지겨울수 있으니 결론적으로 보면 병자호란을 진 이유 중 주요 이유 하나는 바로 홍이포 때문이라고 보면 됩니다.

저 멀리 뒷편에 보이는 것이 방화수류정과 그 앞에 운치가 있어 멋들어진 화홍문입니다. 지난번에 저 화홍문을 개방해서 쉼터가 되었지만 지금은 문을 닫아 놓은 상태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방화수류정과 화홍문을 아주 좋아합니다.

문을 잘 보면 일반적으로는 문을 앞으로만해서 옆으로 여는 것만 알고 있지만 잘 보면 위에 문을 거는 부분이 있고 문도 역시 경첩이 세로에만 있는것이 아니라 가로 방향에도 설치가있습니다.
그래서 문을 가로 방향 쪽으로 한번 접고 나서 다시 세로 방향으로 접어 고정시키면 문을 전면 개방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화성길입니다. 아까 말씀대로 제가 가는 코스는 상대적으로는 평탄한 길이라 쉽게 걸을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길도 알고 본다면 설계에 당시 놀라운 비밀이 잘 숨어져 있습니다.
지금은 복원된 길이지만 이 길이 원래는 약간은 사선으로 기울어져 설계가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가 오거나 한다면 빗물 배수에 문제가 될수 있기 때문에 경사를 만들어서 물이 고이지 않고 빗물이 잘 빠져나가게 끔 만들어 진것입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비밀스러운 작은 문들이 몇개 있습니다. 지금은 이게 왜 암문이라고 부르는 건가 이렇게 잘 보이는데 하고 동의 못하실수가 있는데 수원화성의 경우에는 지금 개활지 같이 노출이된 상태라서 구분이 쉽지만 남한산성의 암문 같은 경우에 화려하지도 않고 만약에 나무 등에 가려진다면 멀리서 적이 쉽게 식별할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문쪽 가까이 와서야 확인이 가능하지만 전쟁중에는 성에 가까운곳에 적이 나타난다면 바로 전투가 시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원화성 연무대로 들어 갑니다. 보통 연무대에 걸쳐 앉아 쉬고만 가시는 경우가 많지만 뒷편도 가보시면 다른 것도 많이 볼수가 있는데 그냥 막 투박하게 지어도 되겠지만 구석구석 이렇게 심미적인 부분까지 세밀히 신경을 쓴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투석으로 실제로 전쟁시 아무것도 없으면 돌이라도 긴급하게 사용을 하기 위해 돌을 정해진 곳에 또 정해진 양만큼 보관을 해야 하며 불랑기라고 하는 조선후기의대표적인 무기도 볼수가 있습니다. 물론 아까 홍이포에 비하면 아주 아담한 사이즈입니다.
그런데 화포는 크고 많이 만들면 좋은것 아닌가 하실수 있는데 화포는 발사시 큰 충격과 열을 받기 때문에 대포의 몸통 자체의 내구성을 확보하는 것과 그리고 포탄이 커질수록 이에 따라 화포의 크기도 커지고 마찬가지로 어마무시한 화약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유명한 동심돈입니다. 20여년 쯤 전에는 저 안에 들어갈수 있었는데 지금은 붕괴의 위험인지 보존의 목적인지 들어갈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말씀드린바 처럼 벽돌로 지어진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동심돈의 경우 조선후기 전략적 가치가 크지가 않습니다. 화포 전쟁을 하는 시대 인데 저렇게 뚱뚱해서 표적이 되기 딱 좋은 안에서 활과 총을 쏘는 동심돈은 수비에 제한적이인 것이 많습니다.
아무리 벽돌로 만들어진들 화포에 계속 맞으면 속이 빈 공간이 많은 공심돈은 공격을 받으면 이에 따라 무너지기 쉬울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정약용도 이걸 만들지 않았는데 제 기억이 맞다면 다른 신하가 먼저 설계했는데 정조가 이걸 너무 마음에 들어하여 정약용도 공심돈을 만들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역시 옛날이나 지금이나 윗사람 의중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문 앞을 보면 아까 장안문과 같이 바로 문이 노출되는게 아니고 지금처럼 문 앞을 반원의 다른 벽이 한번 감싸 안듯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아성이라고 하는데 아성 안으로 적들이 들어오면 위에서 다방면에서 적을 공격하기 위함이니다.
반대로 아성이 적의 손에 넘어간다면 이는 곧 성문은 함락되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아시는 아성이 무너졌다의 그 아성이 바로 이 아성입니다.

그리고 봉화를 올리는 봉화대 봉돈이 나옵니다. 반지의 전쟁에서 좋아하는 전쟁씬이 바로 횃불을 올려 로한이 원군을 요청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비슷하게 봉돈은 평소에 하나만 불을 올리고 멀리에 적이 오면 2개, 적이 식별 가능하다면 3개, 성만 앞까지 왔있으며 4개, 전투가 시작하면 5개 이런 방식으로 불을 올리게 됩니다.
원래 우리나라 봉화대 위치는 주로 산에 있는 경우가 많지만 수원화성의 경우에 도심 한복판에 있는게 특징입니다.

그리고 각루인데 평상시에는 안에서 외부를 감시를 하고 전시에는 총을 쏠수 있습니다. 그런데 잘 보시면 여기는 아까 화홍문처럼 장군이 왔다갔다 생활하는 곳이 아닌 일반 병사가 주로 머무는 곳이라서 문을 옆으로만 열수 있고 위로는 접을수 없게 만든것 같습니다. 이건 제 추측입니다.

  그리고 옆에 왠 네모난 작은 벽돌들을 쌓아놓은것이 있는데 이것은 굴뚝입니다. 겨울에는 여기에 온돌을 사용했고 굴뚝을 만들어 연기가 빠져나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돌계단도 네모반듯 하지 않은 이유는 비가 오거나 눈이 왔을때에 너무 네모 반듯하여 반질반질 하면 쉽게 넘어질수가 있으니까 이렇게 자연스럽게 자연적 마찰력이 있는 형태로 만들어 두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고 팔달문으로 나와서 버스를 타고 다시 수원역으로 왔습니다. 팔달문 앞에는 롯데리아가 하나 있는데 여기서 온가족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먹었습니다. 역시 햄버거집의 감자튀김, 족발집의 막국수는 배달보다 가게에서 바로 먹어야 아주 제 맛입니다.

저희집에 수원화성에 관한 책만 5권이 있었을 정도로 제가 아주 좋아했던 여행지이며 답사가기 좋아했던 수원화성 나들이였습니다.

#수원 #수원여행 #수원답사 #수원나들이 #수원화성 #수원화성아이랑 #수원화성아이와함께 #수원화성장안문 #수원화성대중교통 #수원화성버스 #수원화성특징 #수원화성숙제 #수원화성레포트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