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경주여행 국립경주박물관 후기와 경주 현지인 출신이 추천하는 숙제와 레포트 자료 꿀팁

by 커피는바닐라라떼 2024. 9. 10.
728x90
반응형

박물관을 좋아하는 저희 둘째를 위해 들렸던 국립경주박물관입니다. 경주에 살때 두어번 정도 왔었는데 거진 십년만에 왔지만 역시나 크게 변한것은 없는듯 합니다.

사실 제가 젊었을때 놀러왔다면 황리단길이나 경주핫플위주로 여행 계획을 세웠겠지만 저희는 아이랑 함께 경주 여행중이라여유 있으면서 알찬 코스로 경주여행을 수립했습니다.


경주박물관 입구쪽에 만발했던 벚꽃입니다. 늦봄에 갔던 터라 벚꽃이 예쁘게 많이 피어 기분이 좋은가 했지만 입장료가 없는 무료관람이라서 본능적으로 기분이 많이 좋아진거 같습니다.

입구쪽에 있는 신라연표입니다. 신라는의 경우 기원전 57년 건국해서 935년 멸망했으니까 거의 천년의 역사를 가진 천년의 국가입니다.
그런데 단위 국가에서는 고려나 조선이 기본으로는 몇백년씩 하니까 마치 제 유머감각 만큼 감이 잘 안올수 있는데 세계적으로 보면 약 4000년이 넘는(솔직히 반만년은 오버입니다) 역사에서 상대적으로는 국가 기준에서 오래 왕조가 유지가 되었습니다.
물론 왕조가 오래되었다고 해서 꼭 좋은건 아닙니다. 다만 하가지 국사시간 나라이름을 덜 외워도 되는건 분명 좋습니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박물관 입구에서 볼수 있는 뗀석기입니다. 저 짱돌은 내가 많이 본건데 이건 억지 아닌가 할수가 있는데 뗀석기와 간석기를 일반적인 돌과 구분하는 가장 큰 기준은 그 돌이 사람이 살았었던 흔적과 함께 있었느냐와 아니냐의 차이 입니다.
그래서 진짜 뗀석기라 할지라도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없었다면 그건 단순히 돌이됩니다. 이래서 뭐든지 위치 선정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역시나 마찬가지 국사시간 단골 문제로 나오는 동검입니다. 참고적으로는 단골의 유래 중 하나는 단군, 단군은 무당 즉 예전에 길흉화복이나 병원 대신에 무당을 찾아간 일이 많아 거기서 유래가 되었다는 썰이 있습니다. 뭐 대충 달걀은 닭의 알을 줄여 달걀이라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토우장식 항아리 교과서에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19세 관람불가 부분도 있는데 이것을 자세히 설명하면 티스토리AI님이 불쾌해하거나 오해하실수가 있으니 궁금하신분은 댓글로 주시면 됩십니다.
토우가 나온 이유는 순장이 사라지는 시점부터 순차적으로 생긴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순장은 다들 잘 아시겠지만 사람이 죽으면 산채로 같이 혹은 죽여서 함께 묻어버리는 것인데 순장이 사라진 이유는 인류애가 생기거나 혹은 그 당시 인권이 좋아져 사라진게 아니라 자꾸 순장 때문에 노동력을 가진 사람을 죽여 버리니까 부족의 힘이 약해져 자연스럽게 사람은 이제 못 죽이고 대신에 사람 닮은 토우를 넣어 뭐라도 같이 묻었으니까 되었다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경주 문화재 단골 소재 곱은옥 옥장식입니다. 이걸 생명과 연계하여 태아 모양으로 생명 탄생과 번영을 기원한다 해석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현미경도 없던 시절 일일히 동물이나 사람의 배를 무참히 갈라서 태아의 모양을 확인 한것도 아니라서 그건은 아닌듯 합니다. 그냥 때려 맞춘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요새 아주 가격이 고공행진 중인 금장식입니다. 금이 녹 쓸지 않고 변하지 않아 예전부터 금장식과 은장식을 주로 한것이데 과학적으로 이것을 따지면 금속 반응성이 낮기 때문에 금은 산화작용이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나트륨, 칼륨 등은 반응성이 높아서 쉽게 반응 및 타원소와 결합을 하고 납과 구리 수은 은 금 등등은 반응성이 아주 낮기 때문에 원소 원형 그대로 있는 성질이 있어 그러한 것 뿐입니다.
참고적으로 우리나라는 예전에는 아주 금세공력이 높은 기술이였습니다. 아래서 보이는 사진도 잘 보시면 일반적으로 평평한 모양의 장식이 아니고 오돌도돌한 표면과 복잡한 꽈배기형태가 복합적으로 금 세공이 되어 있습니다. 이게 굉장히 사실적으로 어려운 금 세공법입니다. 그래서 금반지의 경우도 그냥 가락지 보다는 세공된게 훨씬 비쌉니다.
물론 이게 팔때는 세공이고 필요 없고 단지 금 무게가 최고 입니다.
  그리고 금을 99.9% 이렇게 표기 하지 않고 14k 18k, 24k 이렇게 k로 표기합니다. 그 이유는 이것이 무슨 열매 k로 시작하는데 열매 암튼 그것을 한 손에 다 쥐면 보통 24개 정도가 되는데 거기서 금의 기준이 표기된 유래입니다.
그래서 14k뜻은 금 함유량이 14/24가 되고 148는 18/24가 되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24k뜻 24/24가 그 이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다른 16k는 없냐 하실수가 있는데 이게 유럽에서 과거 이리 저리 해보다가 결국은 14,18,24k가 세공을 하기도 쉽고 미관적으로 좋아 보이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일반적으로 금은방에서 보는 기준으로 규정을 수립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원래 전 세계가 하나로 이어졌다는 음모론에 하나 예시로 나오는 하는 금관도 있습니다. 예전에 문화 어디에서나 왕은 항상 장식이 있는 금관을 꼭 머리에 쓰고 있었습니다. 가면의 형태도  아니고 마치 손오공머리띠 처럼 둥근 모양의 형태도 아니며 항상 사슴뿔 형태가 모든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왕의 금관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랍 문화가 느껴지는 보검 장식과 지금은 흔한 유리컵입니다. 유리의 경우 높은 온도에서 만들어져 때문에 오랜 옛 시절에 매우 높은 값어치 보물이였으며, 이것은 페르시아와 로마시절로 추정되는 유리잔이 과서 신라고분에서 발견되어 신라가 해외와 교역이 과거 부터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수 있습니다.

참고적으로 신라 하면 마치 가야당근농장 말고 그냥 가야를 항상 빼 놓지 않고 설명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사실 가야는 과거 학교 에서 배울때 철기문화가 매우 높은 걸로 알고 있는데 반대로 삼국에 포함도 안될 정도로 아주 존재감이 없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 복합적 이유가 있겠지만 과거 가야 자체가 국가 개념이 아니라 연맹형태의 국가와 부족 사이 어디 애매한 구성과 광개토대왕비에 나온 듯 고구려가 가야 공격으로 인해서 가야의 힘이 아주 크게 약해졌습니다.
그리고 남은 가야의 세력도 백제와 함께 신라를 공격했지만 마찬가지로 또 역시나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입니다. 추가적으로는 아마 가야 출신 김유신 등의 활약으로 인해 가야를 굳이 고집하기 보다 어디에서라도(신라) 나만 잘 살면 된다라는 국가개념이 아닌 개인위주 보신주의가 있지 않았나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래 보이는 석상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마치 외국인의 생김새를 가진 예복을 입은 사람으로 볼수 있는데 이로 인해서 아까 위에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신라의 경우 외국과의 교역이 아주 활발했을 뿐 아니라 신라 내부에 예복을 챙겨 입은 외국인이 있을 정도 외국인 우대 정책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 많은 신라의 외국인이 어디로 언제 어떻게 사라졌을까요? 이것은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포스팅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야외에 석가탑과 다보탑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 탑이 있습니다. 이것은 불국사 포스팅때 말씀을 드렸지만 돌림자도 아니고 왜 이름이 석가와 다보인가 하실수가 있는데 석가여래와 다보여래를 합쳐 석가와 다보입니다.

#경주 #경주박물관 #경주여행 #경주아이와함께 #경주국립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경주중앙박물관 #순장토우 #순장이사#경주나들이 #국사숙제 #역사숙제 #경주숙제 #경주레포트

728x90
반응형